소설이 이렇게 불편할 수 있나요
하루에도 수십 페이지의 논문을 읽고 작문을 해야 하는 저에게, 소설 장르를 읽는 시간은 철저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관점에서 홀은 잘못된 소설 선택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책을 덮는 순간까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오기)에게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들고, 희망을 주었다가 곧바로 그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중간에 책을 덮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보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제가 오기라도 된 듯이 오기에게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죠.
하루아침에 극단적 약자가 된 오기
오기는 잘 나가던 대학 교수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던 중 차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몸이 되어 버립니다. 오직 눈을 깜빡이는 것이 그가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일찍이 부모를 잃은 오기는 죽어버린 아내의 모친, 즉 장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약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오기는 아내와 이혼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바람을 피운 것이 화근이었죠. 아내와의 여행에서 차 사고가 난 것도, 이혼을 하자고 외치는 아내가 자기 화를 이기지 못하고 운전 중인 오기를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을 아내는 모두 일기에 적었습니다. 아마 장모는 그 일기를 보고 오기가 미워졌을 겁니다. 장모가 가질 마음을 지레 짐작하며, 오기는 장모의 행동이 영 수상쩍기만 합니다.
돈이 부족하다는 장모의 말이 그의 재산을 뺏기 위해 지어낸 말 같습니다. 비록 자신을 병신 취급하긴 했지만, 간병인을 해고한 장모의 행동도 이해가지 않습니다.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는 의사의 말에 장모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이제 장모가 병원에 데려가지 않습니다. 다리에 힘이 조금씩 들어가는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장모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렇게 의심만 하던 오기는 마지막 힘을 손가락에 실어 침대 밖으로 나와 집 밖으로 기어갑니다. 그러나 장모의 다리가 그의 앞길을 막습니다. 장모를 피해 방향을 틀고 더 나아가자, 장모가 우물을 만들겠다고 파 두었던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부드러운 흙이 느껴지고, 그의 삶은 끝이 납니다.
내가 극단적 약자가 된 듯한 불쾌함
이 소설이 불쾌했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오기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나타나긴 하지만, 곧바로 소멸해버립니다. 손가락이 아니라 팔이 움직이게 되면 다시 교수가 되겠다고 희망을 가진 오기에게 장모가 고합니다, 방금 자네의 퇴직서를 내고 왔다고. 다리가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물리 치료사는 오기의 착각이라고 합니다. 소설 내내 이런식으로 오기의 희망은 행복할 틈도 없이 절망으로 다가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독자가 오기의 입장이 될 수 있게 너무나 편안하게 몰입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제가 이 일의 주인공이 된 마냥 희망이 자꾸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극단적 약자에게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소설책을 계속 펼치게 됩니다. 아마 마지막에는 차라리 어서 죽여달라는 심정으로 책을 넘긴 것 같습니다.
마냥 장모를 욕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철저하게 오기의 입장에서 쓰여졌습니다. 장모의 내면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구절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오기의 약점을 이용해서 괴롭히는 장모가 너무나 미웠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 고민했습니다. 나는 한번도 세상 어딘가에 있을 오기에게 장모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사실 그런적이 있습니다. 중학생 때 특수반 친구들을 놀린 적이 있습니다, 놀려도 따라오지 못한다는 못된 이유로… 너무나 잘못된 행동이었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이후였습니다. 타인의 개입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괜스레 잘못했던 과거가 떠올라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의 불행에는 인과가 있었을까
오기는 사회적으로 잘나갔지만, 도덕적으로는 잘못된 이였습니다. 아내가 있으면서도 바람을 폈고, 바람을 피면서도 여제자와 불온한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불구가 된 오기는 자신의 내연녀였던 이에게 의지해보려 하지만 돌아오는 호의는 깃털처럼 가볍기만 합니다.
오기의 불행에는 인과관계가 있었던 걸까요? 적어도 그의 사고는 인과가 아닌 우연에 의한 것이겠지만, 극단적 약자가 된 이후 오기에게 오는 깃털 같은 호의에는 분명한 인과가 있었을 겁니다.
당연하게 누렸던 행복이 박살나는 순간 나에게 남는 것은?
책을 덮고나서 담배로 고통받았을 폐에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해왔습니다. 멀쩡하게 걷던 다리가 힘이 없어지는 상상을 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영원히 컴퓨터에 남길 생각에 착잡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에게 짐이 될 것 같은 인생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때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해봤습니다. 아직은 남을게 없는 것 같습니다. 기가막힌 논문을 쓰면 제 이름이 어딘가에 남게 될까요…
그러나 이 책을 추천하진 않습니다
사실적이고 몰입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학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불편함이 남고 모호함만 남았습니다.
깨알 유머
편혜영 작가님이 쓴 소설 홀은 안 편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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