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 에 수록된 단편 소설이다.
내가 잊을 때, 진정으로 잊혀지는 것
본래는 한권의 책을 다 읽고나서야 느낀점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작품속의 '고모'의 심리가 절실하게 느껴져서 이 심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글을 쓴다.
잊혀진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이든, 미워하든 이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하지만 나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지는 진정한 순간은 나 자신까지도 나를 잊어버릴 때이다. 이는 내가 나를 잊는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살아있지만 내가 과거의 나를 잊을 때, 과거의 순간속을 살아왔던 나의 흔적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고모가 두려워했던 것은 타인으로부터의 잊혀짐일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신을 잃어간다는 두려움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저지를 선의의 행동은 그녀가 사랑했던 서군에게 큰 아픔을 주었다(고 믿는다.) 죄책감이었는지, 연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평생을 자신의 마음의 족쇄로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알츠하이머로 그녀의 과거가 조금씩 사라져가는 시간동안에도 그 족쇄를 풀지 못한채, 아니 풀지 않은 채 살아간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왜 자신에게 고통을 주려고 안달이 난 것이었을까. 그녀조차도 평생동안 그 답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것이 고의가 아닐지라도.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의 모습이 된 그녀는 늙은 서군에게 이 말을 전한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다....
다, 전부, 잊어주세요.
미안하다, 그리고 잊어달라. 이 구절을 읽었을 때,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몇 십년의 시간을 기다려서 하는 말이 고작 미안하다, 잊어달라라니,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길에 계속해서 계속해서 생각해봤다, 왜 그런 말밖에 하지 못했을까. 나는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는 말은 평생동안 당신을 잊지 못했다는 말을 그녀의 언어로 표현했다고 해석했다. 매개체가 죄책감이든 사랑이든 당신을 수십년간 잊지 못하고 지내왔다는 말을 그녀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미안하다는 사과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잊어달라는 말은 이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게 될 과거의 사랑의 순간을 서군만은 잊어주지 말아달라는 절규와도 같이 들렸다.
억지로의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저 두 문장은 너무나 슬프게 느껴졌다. 잊혀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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