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것 같아 죄스러운 날을 여전히 보내고 있다. 활자로 된 스토리를 보는 게 귀찮아짐을 느꼈고, 스토리를 위해 쏟는 시간이 조금 힘겨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우리 학교 교보문고로 가서 재밌어 보이는 소설책을 하나 사려고 마음먹었다. 목적이 없으니 기준도 없었고, 기준이 없으니 익숙한 것이 눈에 먼저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손원평"이라는 세 글자. 어디서 봤나 했더니 아몬드를 쓴 작가님이셨다. 목적이 없으니 기준도 없었고, 기준이 없으니 선택의 시간은 매우 짧았다. 바로 고고
(아몬드의 서평이 궁금하다면?) https://blog.naver.com/tommyandjeff/221868378746
나의 한 줄 평:
관계에 대한 아픔의 혼합색을 분해하여 추출한 손원평의 네 가지 대표색
(그러니 참고해서 아픔을 극복하자!)
아몬드에서는 감정이 없는 아이가 과연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나가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되었다면, 프리즘은 네 명의 사람을 통해서 관계에 어려움을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들이 겪는 관계의 아픔
재인은 과거에 있었던 관계를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한다. 지나가버린 이혼남, 죽은 반려동물들, 아픈 어머니 등, 모든 이와의 관계를 무의미하게 이어가고 있다. 관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 관계를 지속하는 이유를 모른 체 단지 버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어나갈 뿐이다. 그리고 과거에 남아있어야 할 관계는 현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국 그녀는 과거에 있어야 할 관계를 과거에 두고 와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호계는 끈끈하게 이어져야 할 관계가 타의로 끊어진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 아픔은 호계를 관계에 냉소적인 사람으로 바꾸었다. 그가 생각하는 사람 간의 관계는 불필요한 것을 넘어 그를 불쾌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온 호계는 이제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다.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찾아가며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큰 요소를 뒤늦게 깨닫는다.
도원은 자신이 사랑했던 누군가를 번거로운 존재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 어른스러운 사랑으로 포장하지만 그는 그에게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사랑할 자격은 누구도 없앨 수 없고, 누군가에게 부여받을 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진은 '닥치는 대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사람과의 관계는 패스트푸드와도 같다. 그녀가 함께하는 누군가는 근거가 부족하다, 근거가 부족한 게 문제인 줄 알고 그래서 해결하고 싶다. 그러나 해결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결국 근거 없는 관계로 그 고통을 덮어버린다. 그러나 덮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는 것을 이내 깨닫고 만다.
수수께끼처럼 써놨지만 이들의 아픔과 극복 과정이 책의 전부라서 감히 자세히 쓸 수 없었다.
몇 번의 수정을 통해 내 글을 혹시나 읽고 책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프리즘을 처음 읽었을 때의 즐거움을 남겨두고 싶었다.
나는 아픔이 있는가?
이제 곧 있으면 계란 한 판을 채우게 되고 사랑이든 우정이든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면서 살아왔다. 그러니 아픔이 없었다면 거짓말임에 틀림이 없다. 굳이 저 넷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고르라면 호계일 것이다. 타이트한 끈이 내가 아닌 이유로 끊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조금은 있다. 하지만 굳이 고른 것이고 지금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다.
책에서는 많은 종류의 관계 중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지금은 동료 간의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체 이 사람은 왜 이러지...! 하는 어려움. 하지만 사랑이 아니니 패스...
코로나로 어려워진 사랑이 안타깝다
작가님이 책 마지막에 쓰신 글에서 코로나 때문에 사랑이 많이 어려워졌으리라 예상하는 글귀가 있다. 연재 도중 코로나가 창궐하여 인물들에게 마스크를 씌울지 고민하셨다는 내용인데 아래와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코로나 시대에는 역시 연애보다 투쟁적 생활고와 분노가 더 어울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이들은 반드시 만나 사랑을 꽃피웠을 것이라고.
프리즘 작가의 말 중
나도 너무나 공감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몇 번은 얘기한 것 같은데, 20학번과 21학번 친구들이 너무 안타깝다. 수업이야 비대면으로 들을 수 있지만, 새내기 시절 두근거리며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그리고 짝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리고 자신의 짝을 찾아 어떻게든 애를 쓰는 그런 경험이 너무나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님 말처럼 할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성비가 박살 난 공대에서는 못할 사람들은 코로나가 없어도 못했겠지만. 아무튼 코로나로 많이 힘들지만 다들 사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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