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고르게 된 계기는 스테디셀러는 스테디셀러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주제와 시대상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이 책의 주인공 핀치 (아버지 핀치와 혼란을 막기 위해 "스카웃"으로 후술)과 정서적인 교감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앵무새 죽이기는 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20세기 초-중반의 미국 남부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이 세계에서 피부색은 인간의 신분을 나타내며 동시에 한정 짓는다. 까만 피부의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하는 직업을 갖고, 하얀 피부의 사람들이 누리는 인프라도 자유로이 누릴 수 없다. 철저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즉 인간에 대한 박애를 기저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런 차별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흑인들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히 분리되고 차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미국에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짐크로 법 (Jim Crow Laws)라는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하다"라는 인종 분리 정책이 있었고, 화장실, 식당, 대중교통 등에서 피부 색에 따른 분리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상은 앵무새 죽이기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특히 흑인을 위한 교회가 따로 있고 백인 아이들이 그 교회에 가는 것 자체를 신기하게 여기는 모습도 나온다.
스카웃은 10살도 되지 않은 꼬마 여자아이이고, 미국 남부의 엘라바마 주의 메이콤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는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는 정의로운 변호사이다. 그런 아버지의 아래에서 자란 스카웃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차별이 만연할 따름이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법정에서의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과 성실한 흑인이 방탕한 백인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꼬여 있는 세상을 목도한 스카웃은 순수한 목소리로 세상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녀는 왜 흑인은 단지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는 것인지 끊임없이 어른들에게 질문한다, 그러나 차별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어른들은 스카웃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해주지 못하고, 아버지 애티커스는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어휘로 설명하느라 인종 차별의 본질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해 주지 못한다. 다만, 스카웃은 조금씩 성장하면서 차별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올바르지 못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 성장 과정에서 스카웃은 인종 차별뿐 아니라 성별에 대한 차별, 약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모에게서 듣는 숙녀가 되는 것에 대해서 반발하기도 하고 그것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숙녀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 있겠다. 또한 매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약자 아서 래들리를 괴롭히다가도, 책의 마지막의 순간에는 그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그 괴롭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된다. 그때의 깨달음은 단지 래들리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애티커스의 잔소리보다 더 큰 깨달음을 스카웃에게 주었을 것이다.
차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와의 차별 등 인간을 차이를 규정할 수 있는 모든 기준에 대해서 차별이라는 단어가 함께 쓰이고 있다. 심지어 차별은 앞선 예시와 같은 명목적인 기준이 아니더라도 부자와 빈자와 같은 스펙트럼이 있는 기준과도 너무나 빈번하게 함께 쓰이고 있다. 차별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아졌는데, 정작 그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남성의 징병이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성은 임신을 하지 않느냐는 식의 무의미한 논쟁 (그리고 vice versa)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스카웃이 차별의 존재를 깨닫고 그것이 옳지 않음을 "느끼게"되기까지의 가장 중요한 단계는 차별을 받는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차별을 받는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심지어 "알고리즘"에 의해서 발생하는 정보 습득의 편향은 대다수는 차별받는 이의 세상을 경험하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렇기에 차별에 대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많아지고, 그것에 대한 성숙한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은 병들어 가고 있다. 혼인율의 하락에는 어느 정도 이러한 사회적 기조가 원인이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나는 이 과정이 일종의 성장통이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차별받는 타인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훗날 내가 받게 될 차별을 해결하지 못하는 슬픔을 겪고, 그리고 나서야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이 되어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이길 바란다. 열 살도 안 된 스카웃은 그렇게 차별의 존재를 깨달았고, 그리고 그보다 성숙한 우리 사회는 그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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