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Feel/책 되새김

공상 과학 소설이 담은 공상 사회 (Social Fiction)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by 승공돌이 2021. 9. 22.

 

굳이 열차 안에서 찍은 사진.

근 몇 년간 명절에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납기는 정해져있지 않지만 왠지 해야만 할 것 같은 일들에 압도당하며 그리고 그것들을 결국에는 연휴 동안에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섬주섬 논문을 잔뜩 프린팅해 가는 연휴들이었다. 그러나 올해의 추석은 달랐다. 연휴 전에 끝마쳐야 할 일들을 모두 끝냈고, 그 외의 일들은 연휴 후에 시작해도 문제없도록 모두 조율해놓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서 읽을 소설을 한 권 가진 채로.

​내가 고른 책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었다. 그녀가 글을 쓰는데 아무런 관련도 없고 응원한 적도 없지만, 그녀는 나의 동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 이 책을 선뜻 읽게 되지 않았다. 그녀의 배경이 그녀의 작품의 흥행에 큰 요소가 아니었을까 와 같은 근거 없는 이유였다.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5분 안에 책을 사야 했고, 책을 선택하지 않을 근거 없는 이유보다는 흥미를 이끌어내는 소설의 제목이 더욱 자극적이었다. 별생각 없이, 심지어 이 책이 단편집이라는 것도 모른 체, 책을 구매해서 부랴부랴 가방에 넣었다.

​굉장히 몰입감이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각자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아마 이는 작가의 유려한 글 솜씨와 함께, 그녀가 그려내고자 하는 SF 세상의 이야기가 독자인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많은 단편들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다루고 있고, 그런 갈등을 극적으로 증폭시키는 장치로 공상 과학 기술을 쓰고 있다. 즉, 공상 과학 소설의 탈을 쓰고 있지만 주제는 특정한 갈등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갈등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갈등이기에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가족이 먼저 떠난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갈 수 없게 된 안나는 남한으로 먼저 가족을 떠나보냈지만 결국 월남하지 못한 사람 같다고 해야 할까. (소설 읽은 사람도 공감 못할 수도 있는 난해한 예시인 것 같다)


책을 덮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분리할 수 있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갈등을 제거한 세상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결국 나에게 남은 생각은 과학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매우 불안정하지만, (사회라는 계에서) 행복은 불행의 부재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자. 불행의 원인을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불행의 원인의 제거는 또 다른 불행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결국 불행의 부재라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어쩌면 불행의 제거가 아닌 불행을 분배하는 새로운 방식의 발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불행의 총량이 줄어드는지, 불행한 사람이 적어졌는지, 그것은 결국 과학 기술의 발전의 방향과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사회에 달려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뻔한 결론이지만, 공상 과학이라는 새로운 매개를 통해 이런 생각을 갖게 해준 김초엽 작가에게 감사의 글을 전하고 싶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91190090018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교보문고

김초엽 소설 | “젊은 소설가의 첫 작품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눈과 입을 발견했다. 시선에서 질문까지, 모두 인상적이다.”-

www.kyobobook.co.kr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