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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H정전/마음 끄적

[대학원 생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잊지 말자

by 승공돌이 2021. 9. 13.

 

인듀어런스 호

 

어릴 적 인듀어런스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읽은 적 있다. 남극 횡단에 도전했던 어니스트 섀클턴 (Ernest Shackleton)의 위대한 실패기를 다룬 사진집이었다. 남극 횡단이라는 꿈을 가지고 출선한 인듀어런스호는 남극에 갇혀버렸다. 인듀어런스 호에서 계속 있으면 천천히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판단한 섀클턴은 과감히 배를 버리고 엘러펀트 섬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무인도였던 엘리펀트섬도 답이 없다고 판단한 섀클턴은 극소수의 인원과 통통배를 타고 사우스조지아 섬까지 1300KM를 이동하여 구조대와 함께 엘리펀트 섬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엘리펀트 섬에 남아있던 탐원 대원들도 구할 수 있었다. (그 기간이 600일 정도 된다고 한다)

섀클턴이 얼마나 먼 거리를 통통배로 이동했는지 알아보자..

섀클턴이, 그리고 인듀어런스호의 탐원 대원들이 어떻게 이런 난관을 이겨냈는가에 대해서 분석한 글을 많지만,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대원들이 모두 생존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그 방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대학원을 다니는 친구들과 대학원생 복지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우리 대학원생들은 이런 목표에 대해서 충분히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리 학과 대학원 학회장을 하면서 가장 크게 신경 쓰고 있는 이슈는 대학원생 인건비의 상한선을 높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대학원생은 프리랜서처럼 연구 과제에 참여하면 급여를 받는데, 각 연구 과제마다 대학원생의 man power 중 몇 %를 사용할 것인지를 참여율로 정하고 참여율을 바탕으로 인건비를 산정한다. 이 때, 참여율 100%일 때의 인건비를 인건비 상한선이라고 하고, 박사 과정은 250만원, 석사 과정은 180만원으로 고정되어 있다. 예컨대, 박사 과정 학생이 A 과제에 참여율 25%, B 과제에 참여율 25%로 설정하고 과제에 참여한다면, "저는 A 과제에 제 인력의 25%를 B 과제에 25%를 사용할 것입니다" 라고 선언하고, 결론적으로 참여율의 합인 50% 곱하기 250만원을 하여 월 인건비가 125만원으로 산정된다. 이 때, 이 인건비 상한선은 2008년 이후 단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으며 이 부분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원생 연구 인력의 연구 노동의 대가가 너무 작게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개인 연구를 하지 않고 온전히 연구 과제에 참여하여 연구 업무를 한다고 해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인건비는 달에 250만원인 것이다. 국가기관의 대졸 연구원의 연봉이 500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값은 단지 학생 연구원이라는 이유로 택도 없이 작게 잡힌 것이다 (https://magazine.hankyung.com/job-joy/article/202101208185d). 우리의 인건비가 적절하게 평가되기 위해서는 인건비 상한선을 올려서 대학원생의 연구 노동 한 시간이 정당한 금액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개별 학생의 인건비는 정당하게 산정된 인건비 상한선에 개별 연구원의 참여율을 계산하여 책정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대학원생들이 정당한 인건비를 받게 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얘기하니 어차피 인건비 상한선을 받지 못하는 애들이 더 많고, 생활비도 제대로 못 받는 애들이 대다수인데 상한선을 높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였다. 물론 연구 과제가 충분히 운영되지 못해 인건비를 못 주는 연구실도 있고, 교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인건비를 안 주는 연구실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도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고 인건비의 상한도 그 나름대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예 무의미한 일로 치환해 버린다면 어떤 일을 수행하는 원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즉, 대학원생 인권 향상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음에도, 방향이 조금 다르다고 무의미한 일로 치환한다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면,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방향에 대해 제동을 걸면 안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도착하고자 하는 곳이 남극이라면, 남동쪽으로 가든 남서쪽으로 가든 매일 남극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남동쪽이 아니라 남서쪽이 더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가만히 앉아 남동쪽을 향하는 이의 발목을 잡는다면, 그들은 조금도 남극에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다. 목표는 같다는 것을 잊지 말고 다 함께 그 방향을 잃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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