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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H정전/마음 끄적

시민은 자연 선택될 수 없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학습시켜야 한다

by 승공돌이 2021. 10. 10.

이전에 경주에 놀러 갔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경주에서 꽤나 유명한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해당 식당은 #테이블링 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대기자를 관리하고 있었다. 테이블링의 시스템은 간단하다. 키오스크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면 카카오톡을 통해 대기 번호에 대한 정보가 수신된다. 대기 줄에 지루하게 서있을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내 앞에 몇 팀이 대기 중인지 실시간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내 순서를 놓칠 염려도 없다. 내 번호를 입력하고 나서  어떤 노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테이블링에 자신들을 등록해 줄 수 있겠냐고. 너무 쉬운 일이었다.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카카오톡 쓰실 줄 아시죠?," "이 카톡 방에서 할아버지 오라고 하시면 그때 들어가시면 돼요." 대략 이런 대화가 오가면서 2분 정도 시간에 노부부를 대기 줄어 등록시켜드렸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간단한 프로세스였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키오스크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노인들은 반응형 웹, 앱 등에 잘 반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테이블링의 키오스크의 모습

문득 이제 60줄에 접어드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혹시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는데 테이블링을 활용하지 못하셔서 전전 긍긍하시면 어떡하지, 전자화된 정부 행정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하시면 어떡하지, 와 같은 걱정이 생겼다. 그 이후로 부모님에게 스마트폰을 활용한 다양한 편의 기술들을 알려드리려고 노력했다.

가장 먼저 스마트폰 뱅킹 서비스에 대해서 알려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기술 자체에 대한 벽을 두시기는 모습에 이를 가르쳐 드리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리 기술의 편리함을 설명드려도 이를 수용하실 생각이 없으셨다. "폰 뱅킹 쓰면 되는데 뭐 하러 이렇게 복잡하게 은행 앱을 활용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르쳐 드리자 곧잘 활용하시고 더 이상 폰 뱅킹이 아닌 스마트폰 뱅킹을 활용하시기 시작했다. 벽을 한번 넘어서자 기술의 편의성을 느끼고 활용하신 것이다. 하나씩 알려드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카드 들고 다니면 되지 뭐 하러 삼성 페이를 쓰냐"라는 부모님도 삼성 페이로 곧잘 결제하신다. (심지어 이에 대한 편리함을 자랑하시기도 한다.)

스마트 시티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보면 대다수의 논문에서 시민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어떤 방식의 접근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장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 테이블링을 활용 못하셨던 노부부와 기술 자체에 대한 벽을 느끼셨던 부모님께 기술을 알려드리면서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기 어려워하거나 수용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좀 더 적극적인 기술 학습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즉, nudge를 넘어서 push에 가까운 수준의 기술 학습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습이라는 과정 자체가 어렵고 신경 쓰이는 작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nudge 수준으로는 수용을 거부하는 이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교 꼴찌에게 인강 공짜 이용권을 준다 한들 듣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정작 새로운 기술을 통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들은, 그것이 정부든 기업이든, 이에 대한 push 없이 "사용하기 쉽게 서비스를 만들면 노인들도 활용하겠지?" 식의 접근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정작 노인들은 변화하는 기술에 따라가기도 벅차며, 어떤 이들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느낀다. 기술이 무르익으면 소외된 이들도 챙기겠다는 희망적인 얘기만 늘어놓지만, 정작 기술이 무르익는 시기는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올해 익은 사과가 내년에는 상품성이 떨어지듯이, 기술이 무르익을 때 즈음에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소외를 막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접근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첫 번째는 새로운 기술의 수용 없이도 스마트해진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의 강건한 기술만을 허용하는 것이다. 즉, 폰뱅킹만 쓰더라도 인터넷 뱅킹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모두 사용할 수 있고, 공인인증서가 없어도 집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받을 수 있는 강건한 기술만을 허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소외되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그들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지금의 nudge보다 훨씬 강력한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즉, 기술을 거부하더라도 몇 번에 걸쳐서 수용을 재촉하고, 이해하기 쉽게 학습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편의성을 몸소 느끼실 기회를 제공해드려야 하는 것이다.

​혹은 두 가지가 병행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이제는 관공서 사이트에서 공인인증서 말고 카카오톡/네이버/PASS의 지문 인식만으로 본인 인증할 수 있다. (정작 나는 공인인증서 계속 쓰지만; 이제 공공인증서구나..) 즉, 기술의 벽을 낮추면서 동시에 학습이 충분히 된 서비스로 기존 서비스의 활용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카카오톡/네이버/PASS 본인 인증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고, 관공서가 조금씩 통폐합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서비스 활용성의 확대 속도는 통폐합의 속도와 동일하거나 더 빨라야 할 것이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기업이든 정부든 스마트 시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에 자연 선택되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술을 수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자연 도태시킨다면, 미래에는 내가 자연 도태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내가 제시한 두 가지 방향에 대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누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것에 이를 수 있는 학술적 토대를 만들고 그것이 범용적으로 활용되어 진정으로 스마트한 도시를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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