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있는 이를 '호위'하는 사물의 형태에 대해서
모든 이야기에 아픔이 느껴진다. 그런 아픔의 원인은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아마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아픔이 있던 사회상을 표면적인 모습이 아닌 개인의 삶의 깊숙한 곳에 꽃혀있는 고통이었던 것이 아닐까. 아픔이 아픔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이유는 아픔이 해소되는 장면을 끝내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큰 벽 앞에서 한 없이 나약하게 그려지는 개인이 카메라의 플래쉬같은 작은 사물의 '호위'속에서 근근히 살아남아가는 이야기는 끝내 근근히 살아야만 했고, 살아가야하는 암울한 형태의 결말만 남긴체 끝나고 만다. 그렇기에 치유를 바라고 이 소설을 읽는 것은 그리 추천하지 못한다. 더욱히 나처럼 그들과 같은 슬픔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슬픔의 조각들만이 가슴에 남아있게 되는 느낌을 준다.
그들의 삶을 연명할 수 있게 해주는 '호위'는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아있지 않는다. 어떤 호위는 앞서 언급한 찰나의 광채 속에서 비루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질량조차 없는 형태로 존재하고, 어떤 호위는 자신의 삶을 반성과 후회로 남을 수 밖에 없던 죄책감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형태일지라도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 기댈 수 있었기에 그것을 호위라고 칭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다. 많은 단편 소설속의 주인공들에 동화되기 위해 애를 쓰다가 끝이 나버렸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전에서 호위 뜻을 찾아보니 '두려움' 이라는 이북지역의 방언이라는 뜻이 나온다. 현실이 주는 두려움을 표현해보고 싶었던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해보며 오늘은 잠에 들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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