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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H정전/마음 끄적

메타버스에 대한 메타인지를 기를 수 있는 교육

by 승공돌이 2022. 5. 14.

19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과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digital transformation 이전의 삶을 경험해보았는가 일 것이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오기 전의 세상을 경험하고, 이후의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느낀 사람들이 1990년대 생들이라면, 2010년대 생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개념이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인간과 인간의 연결을 더욱 쉽게 해 주었고, 쉬워진 연결 속에서 인간관계라는 개념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20년을 강타했던 “느슨한 연대”는 쉽게 연결되고 단절되는 디지털 인간 관계가 가족, 직장, 인맥으로 확장된 사태로 분석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느슨한 연대”의 출현은 기존의 끈끈한 연대만 경험했던 1990년대 생들이 digital transformation 이후 느슨한 연대를 경험하게 되었고, 기존에 끈끈한 연대만 존재하던 영역으로 느슨한 연대를 확장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즉, 경험의 과도기에 있던 이들이 연대의 개념을 조금씩 바꾼 것이다.

 

1990년대 생들에게 메타버스의 개념은 기존의 오프라인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을 온라인 상으로 재현한 거울상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메타버스의 나는 현실의 나를 투영한 상이며, 메타버스의 연결은 현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적절한 예시가 아닐 수도 있지만, 게임 상에서 다툼이 현실로 이어지는 현피라는 개념도 결국은 게임상의 캐릭터와 자신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반면, 2010년대 생들에게 메타버스 세상은 현실의 세상과 분리되는 새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즉, 현실 세상의 나와 메타버스 세상의 나 또한 분리되는 개체이며, 분리되었기에 현실에서의 인간관계와 메타버스 세상의 인간관계는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 세상에 존재하는 “나”라는 정체성과 메타버스 세상의 “나”라는 정체성이 분리되고, 메타버스의 “나”의 정체성에 낮지 않은 중요도를 준다. 쉽게 얘기해서, 현실에서 초등학생 3학년 김 군이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과, 김 군이 메타버스에서 “선글라스를 낀 바나나” 캐릭터로 접속하여 “마법 공학 로봇”과 고민을 얘기하는 것이 동일한 중요도를 가진 인간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이전에는 “게임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라는 표현이 화제가 될 정도로 신기한 표현이었다면, 2010년 생들이 사용하는 “VR chat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라는 표현은 자연스러운 표현이 될 수도 있다. (VR chat에 대한 설명)

 

VR chat 에서의 나의 정체성은 "선글라스를 낀 바나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정체성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을 때이다. 최근에 “14세 형의 11세 동생 살인 사건” 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14세 라는 어린 나이에 살인자를 꿈꾸게 된 형이 계획적으로 도끼를 사고 날을 갈아서 동생의 목을 쳐서 죽인 사건이다. 당시에 형이 동생을 죽여도 리스폰될 줄 알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은 어렵습니다). 즉, 현실 세상의 인간관계 방식과 메타 버스의 인간관계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아서 발생했다. 나라는 정체성과 게임 세상의 “전사”라는 정체성을 분리하고, 정체성에 맞추어 인간관계 방식을 분리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의 여론은 게임 중독이 원인이니까 게임을 못하게 하자는 1차원적인 대응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그러나 2010년생들에게 VR chat이 원인이니까 VR chat을 못하게 하자라는 대응은 성립하지 않는다. 현실만큼이나 메타버스의 세상도 그들에게는 중요하며, 심지어 어떤 이들 에게는 현실의 세상보다 메타버스의 세상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메타버스 중독”으로 치부해버리고 억제하려 한다면, 그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억제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그 교육의 핵심은 분리되어 있는 현실의 정체성과 메타버스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메타인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교육과정에서는 현실 세상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도덕/법률 등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현실에서 해야 하는/하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이며, 지향해야 할/지양해야 할 가치관과 메타버스에서의 그것들은 차이가 난다. 우선적으로는 그것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마인크래프트”에서는 사람들을 칼로 죽여도 되지만 현실의 친구들은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마인크래프트에서는 죽여도 되었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안되지?”라는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교육이 선행되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의 도덕/법률과 메타버스의 도덕/법률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해야 할 것이다. “죽여도 리스폰될 줄 알았어요” 따위의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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