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어떤 책인가
공학자는 항상 기술의 가장자리에 있다.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내가 연구한 분야에 대해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개선시켰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의 첨단에 있다고 생각한 나는 기술의 첨단에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첨단은 내가 학문의 맨 앞장에 있다는 오만을 의미하고, 두 번째 첨단은 내가 공부하는 분야가 그저 많은 기술의 뾰족한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첨단의 기술을 뭉뚝하게 다루고 있다. 370여 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공간에 무려 인공지능, 블록체인, VR/AR,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클라우드컴퓨팅, 메타버스라는 7가지 기술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목적은 청자로 하여금 기술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하는 것에 있지 않다. 대신 기술의 개괄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것을 청자가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제공하여 기술 학습의 걸림돌을 제거한다.
열거된 7가지 기술은 산업공학을 연구하는 나에게 익숙하다. 논문을 보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기술에 대해서는 조금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블록체인? 그거 완전 사기 아니야?", "VR/AR 그거 다 투자금 받으려고 하는 사기 기술이야"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기술에 대해서 직접 공부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술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는 명예롭지 않은 의사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370페이지 정도의 책으로 충분했다. 기술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편견을 제거하는데도 충분할 것으로 추정하고, 기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더라도 큰 어려움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추정한다.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온 구절
1장: 상상 그 이상의 IT 기술, '세븐 테크'
문화는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문화를 만든다 (pp.24)
기술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에 대해서 짧게 다루고 있는 소절이다. 그러나 정작 기술을 발전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 대해서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신의 방법으로 응답 시간을 50% 줄였습니다"와 같은 기술을 만든다면, 그 기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할까? 우리 공학자들은 우리의 기술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그리고 현재의 인간의 삶이 원하는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열렬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시대가 스토리텔링의 시대에서 스토리리빙의 시대로 가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스토리 안에서 같이 살아가자는 것이다 (pp.46)
세븐 테크를 통해서 변화될 사회의 모습은 단방향 통신에서 양방향 통신으로의 전환이다. 나 혼자 어떻게 잘 살아왔다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살아온 스토리를 이해하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특히 학문계는 그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첨단의 기술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한 무언가에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런 문화의 대표적인 것이 GitHub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족함이 있는 코드를 과감히 공유하고, 공유된 코드에 대해서 사람들은 "요청"하고 "기여"해서 점점 더 완전한 무언가를 만든다. 나 혼자 무언가를 잘 만들었다는 스토리가 아니라,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2장 궁극의 가치를 실현하는 '인공지능'
AI는 데이터를 연료로 해서 행동을 발생시키는데 (중략) 가치 엔진의 기본 의사 결정은 크게 다섯 단계로 볼 수 있다. (1) 데이터 확보, (2) 어떻게 추론하고 최적화할 것인가, (3) 어떻게 가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산정하고, 확대할 것인가, (4) 인간과 AI가 어떻게 협력해서 시너지를 낼 것인가, (5) AI 엔진을 어떻게 유지하고 운영할 것인가. (pp. 92)
Data-driven 이라는 단어는 기존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인간이 개입하는 부분을 어떻게 데이터로 변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산업공학에서 주로 하는 연구는 (2), (3)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풀고자 하는 문제가 주어지면, 이를테면 "서울에서 포항까지 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싶습니다", (3)에서 이 목표를 수리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확정하고, (2)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1)은 누군가 주었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즉 (1)을 우리가 확보해야 할 데이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라는 제약조건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반성해야 하는 부분은 데이터의 확보, 즉 데이터 큐레이션까지도 AI를 연구하는 사람이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라는 것이다. 설사 현재 상황에서 구할 수 없는 데이터라고 할지라도, "이런 데이터가 주어지면 AI 엔진이 더 정확해질 거이다"라는 인사이트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편, (4)에 대해서는 우리는 항상 고민해야 한다. 자동화는 참 좋은 것이지만 자동화를 통한 가치와 인간의 개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는 그 결이 다르다. 그러나 두 가치가 함께한다면 1+1>2 인 상황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이 (5)와도 크게 관련이 있다고 본다. AI 엔진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인간이 개입할 것인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운영은 데이터 센터 등의 운영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본다.
디지털 나는 현재의 나의 현재를 계량하는 것입니다 (pp.108)
디지털 트윈은 항상 기계나 공정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사람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나도 삼성 갤럭시 워치4를 통해 내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언을 받기도 한다. 내가 일상에서 함께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했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면 새로운 기술 발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3장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블록체인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는 가치가 없다고 한다...하지만 이들은 비트코인만 아는 사람들이다... 애플, 삼성이 각자의 기술을 갖고 있는 것처럼 암호화폐와 블록체인도 하나의 기술로 봐야 한다. (pp.155)
비트코인으로 블록체인을 접하는 사람들 (i.e., 바로 나!)은 블록체인 기술을 암호화폐에 한정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 적용되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고, 블록체인의 잠재성은 더욱 크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에 블록체인은 폰지사기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기를 부정적 평가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멀리하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블록체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산업 공학자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부분은 우리 학교의 모 교수님에게도 비슷한 점을 볼 수 있었다. "블록체인 그거 다 첨단의 데이터베이스로 만들 수 있는거 아니야?"라는 발언에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무관심을 대변한다고 본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저장/분석/처리를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닌데 말이다.
4장 완벽히 현실적인 디지털 VR/AR
기술의 도움으로 더 편리해지는 세상이지만, 사람 간의 관계와" 소통에서 가치가 창출된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을 내가 하고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기술자가 아니어도 그것을 활용해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된다. (pp.194)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작동원리보다 그 기술이 사회의 본질 중 무엇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디지털 VR/AR이라는 기술은 현실의 세상에 정보를 더 준다거나 현실보다 더 멋진 세상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 경우, AR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 VR은 새로운 세상에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무엇이 달라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내용은 4절에서 설명되긴 했지만 기술 전반에서 고민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5장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로봇공학
인공지능과 로봇이 무엇을 할것인가보다 인간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pp.215)
인공지능과 로봇이 잘 할잘할 수 있는 일과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일은 차이가 분명하다. 인간이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도 인공지능과 로봇에게는 어려울 수 있고, 인간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 로봇에게는 쉬운 일일 수 있다. 로봇이 우리를 완전히 대체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대체될 수 없는 일을 인간이 수행하면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현실의 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범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어떤 기술이 있다면 그 범위가 넓어질 수 있을지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로봇이 지속 가능하게 교류하면서 세상을 더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6장 새로운 문명의 표준 사물인터넷
인간은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데 스마트홈에는 그런 자극과 매력이 부족하다 (pp.260)
문화는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문화를 만든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기술은 그 자체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기능이 항상 선택 받는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인간이 지루한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있다. B2B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고, 현재 상용화된 기술이라고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극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한편, 책에서 나온 예시와 같이 QR 코드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코로나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서 지루함을 뚫고 우리 삶에 들어온 기술이다. 이처럼 지루함이라는 임계점을 억지로 뚫고 들어온 기술에 대해서도 우리는 새로운 자극을 주는 방법을 개척해야 한다.
일찌감치 세계관을 바꿈으로서 성공한 사람들은 보다 빠르게 디지털 신대륙에 안착한 사람들이다. (pp.265)
세계관을 바꾼다는 것은 기존의 것을 탈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것, 즉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어려운 일이고,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어렵게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도태되고 제한된 수준의 성공밖에 할 수 없다. 디지털 신대륙 위에서도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흐름을 빠르게 알아내야 성공할 수 있다.
저자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1) 사용해보고, (2) 투자해보고, (3) 사업을 기획해 볼 것을 추천한다. 하나씩 살펴보면서 기술을 이해하고 새로운 세계관의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7장 낯설지만 익숙한 클라우드 컴퓨팅
7장의 내용은 어느 한 문장을 선택하기 힘들 정도로 재미난 내용이 많았다. 전반적인 내용은 자원의 제약을 줄이는 클라우트 기술을 꿈꾸라는 것이다. 사실 클라우드 컴퓨팅은 품질 분야에서 PSS와 비슷한 개념이고, 기술기획에서 how가 아닌 what에 집중한 서비스이기도 하다. 우리는 GPU가 필요한 게 아니라, GPU의 연산이 필요한 것이고, 필요한 연산만큼만 사용하겠다는 콘셉트이다. 비슷한 개념을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What에 집중하면 사업의 초기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8장 또 하나의 나를 꿈꾸는 세상 메타버스
오프라인의 필요성이 일부 줄어들 여지는 있지만, 고객들은 실제와 가상이라는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으로 양쪽을 다 필요로 할 것이다 (pp.344)
내가 빈번하게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상반된 개념이 양립할 수 없다고 짐작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 공존할 수 없다고 지레 짐작하듯이 메타버스와 현실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지는 현실은 부자들의 세상이고, 메타버스는 빈자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마치 로봇이 잘하는 것은 로봇이 하고, 인간이 잘하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하듯이 말이다. 상반되더라도 함께 존재하면서 시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며
기술을 가까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기술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였다. 조금 아는 사람의 철학이 더 무섭다는 말처럼 기술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술에 대해서 다가갈 기회가 사라진 사람이 나야 나! 나야 나!...
높은 레벨에서 기술의 개괄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각 기술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볼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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