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오늘 본 사과가 왜 사과처럼 느껴지지 않았는가 고민해 봤습니다. 이럴 땐 역시 남들이 잘 정리해 둔 프레임에 제 생각을 억지로라도 끼워맞춰 보는게 도움이 됩니다.
철학자 칸트가 남긴 어록에는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가 있습니다. 저는 철학사만 슬쩍 본 초보이지만, 저 멋있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설명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략적으로, 직관 (내용)과 지성 (사유, 개념)이 동시에 있어야만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과는 감성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감성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내용이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온전히 사과를 받아들일 (사유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과는 내용은 반성하는 감성만큼이나, 혹은 내용을 제대로 구상하는 것이 사과의 70% 이상을 차지할 것입니다.
사과의 내용에는 사실, 진심, 행동이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 사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
- 진심: 진정성 있는 사과의 구절
- 행동: 보상/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 제시
그냥 세 가지 리스트에 맞추어 대충 말하면 될 것 같지만, 막상 사과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저 세가지를 채우는 것이 정말로 어렵습니다. 어디까지 내 잘못이라고 정의해야 하지? 이건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고민이 시작되면서 "사실"을 정의하게 되고, 어떤 표현을 통해서 내 사과가 진정성 있게 느껴질지를 고민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는 "진심"을 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행동"을 정의하면서 말뿐이 아닌 실체가 있는 사과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막상 내가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저 내용들을 억지로라도 만들게 되면 내가 할 "사과"를 보다 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상대가 인식하기 적합한 사과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용이 완벽했다는 "이재용 사과문" 전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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