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파동이고 (동시에 입자이며) 파동은 파장을 가진다. 사람이 볼 수 있는 파장의 영역은 대략 400-700 nm 정도이며, 이 영역의 빛을 가시광선이라 부른다. 우리가 보는 무지개에서 보라색은 400 nm 부근이고, 빨간색은 700 nm 부근의 빛이다. 사람들은 빛을 파장을 가리키는 숫자로 부르지 않고, 보라색, 빨간색과 같은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 이는 빛의 파장을 측정하기 전에 색깔이라는 개념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색을 느끼기 위해서는 관측하고자 하는 대상의 빛이 눈으로 들어와서 측정되고 측정된 정보가 뇌로 전달되어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측정 장비 (원추체)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아주 작은 확률로 정보가 뇌로 전달하는 과정이나 해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색약이 된다. 즉 눈으로 들어오는 빛이 같더라도 그것을 측정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색깔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색약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색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색약이 특정 색 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한 “다른 색”이란 모든 색을 구별하지만 느끼는 색 자체가 나랑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라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Figure 1은 동일한 가시광선 파장대에 따라서 나의 뇌에서 해석한 색깔과 가상의 다른 인물 A가 해석하는 색을 보여준다.
나는 750 nm 파장의 빛을 보면 빨간색으로 느껴지고, 나에게 익은 사과는 빨간색이다. 반면 A는 750 nm 파장의 빛을 보면 (나의 색 체계에서는) 파란색으로 느껴지고, 그에게 사과는 (나의 색 체계에서) 파란색이다. 그러나 우리는 날 때부터 저 색을 “빨간색”으로 부르는 사회에서 살아왔고, 각기 보는 정보가 다르더라도 함께 빨간색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색은 다르지만, 우리는 750 nm의 색에서 정열을 느끼고, 따뜻함을 느끼고, 그리고 위험을 느낀다.
다른 예시로 정보의 차이를 느껴지게 해보자. 우리의 피에는 헤모글로빈이 들어있어서 700nm 정도의 파장의 빛으로 우리 눈에 들어오고, 투구게의 피에는 헤모시아닌이 들어있어서 400 nm 정도의 파장의 빛으로 우리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사진 속에서 투구게는 파란 색의 피를 뿜어내고 있지만, A는 (나의 색 체계에서) 빨간색 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나와 A가 공유하고 있는 “사실”은 투구게가 400 nm의 빛으로 측정되고 있다는 것이며,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느끼는 색은 전혀 반대인 것이다. 만약에 드라마 시크릿 가든처럼 갑자기 나와 A의 몸이 바뀌게 되어, A의 원추체와 뇌를 내가 사용하게 된다면, 나는 투구게가 붉은 피를 내뿜는다고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심지어 김치는 파란색으로 보이게 될 것이며, 포항 앞바다는 피바다로 보일 것이다).
이러한 가상의 인물인 A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A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내가 400nm 파장의 빛을 보고 “저건 파란색이다”라고 말하면, 그도 그의 색 체계 속에서 “그래 파란색이야”라고 대답할 것이다. 체계 자체가 다르더라도 우리는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같은 색 체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400nm 파장의 색이라는 “사실”과 원추체와 뇌를 거쳐서 “인지한 사실”이 당연히 같다고 생각하고 살 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바깥 세계의 “사실”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지된 사실”로 해석하게 되고, “인지된 사실”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마치 A의 세상에서 김치는 나의 색 체계에서 파란색인 것처럼…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는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색을 이해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길이, 넓이, 깊이와 같은 공간에 대한 인지도 모두가 다르다고 느낄 것이며 (이것은 하얀 방이 넓어 보이는 착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지의 차이이다), 소리, 맛, 냄새 모는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랑”, “감사”, “행복”, “혐오”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도 완전히 다를 것이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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