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에는 보잉 선글라스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선글라스를 구매하였다. 평상시에도 쓸 수 있는 무난한 스타일로 맞추었는데, 오랜만에 선글라스를 끼니 눈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서 길을 걷는 도중 내가 끼고 있는 색안경(선글라스)이라는 단어와 실과 바늘처럼 함께 다니는 편견이라는 단어가 연상되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색안경을 껴서 내 눈이 편해지는 것처럼 편견도 편견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뻔한 생각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색안경과 편견에는 유사점이 많다. 색안경의 기본적인 원리는 특정 파장 영역의 빛이 투과되는 수준을 낮추어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예컨대 파란색 색안경은 적색 영역의 빛을 차단해주어 세상을 파랗게 보이게 해 준다. 무엇이 되었든 색안경을 끼면 눈에 들어오는 빛이 줄어들어 눈이 굉장히 편해진다. 하지만 색안경 밖의 세상은 그대로이다. 색안경을 벗으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지 않듯이.
편견은 특정 영역의 정보가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도록 차단한다. 예컨대, 정치적으로 특정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당의 국회위원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정보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 되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무슨 잘못을 어떻게 저질렀는지 자세히 알아보지 않는다. 반면 다른 당의 국회의원이 솜털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관련 기사를 찾아보며 구체적으로 어떤 먼지인지, 먼지가 얼마나 큰지 면밀하게 알아본다. 마치 파란색 선글라스는 붉은빛을 투과시키지 못하듯이 지지당의 잘못은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 그리고 파란빛만 투과되듯이 반대 당의 잘못은 너무나 잘 투과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대로이다. 지지하는 당이나 반대하는 당이나 잘못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둘 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편견은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편안하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좋은 정보만 들어온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바꿀 필요가 없다. 변화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쁜 소식만 들어온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꾸준히 싫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전에 이전에 싫어했던 감정을 번복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다.
그렇다고 편견을 가진 상태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행의 풍경을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색안경을 벗고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색안경을 벗어야 비로소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다. 편견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있어도 편견을 없애야 비로서 세상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나와 같은 편견을 가진 집단에 들어가면 편견을 벗어야 비로소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다.
선글라스를 끼고 놀았지만 선글라스를 벗으니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내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었었다. 편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무엇인지 내가 편견을 걷어내기 전까지 알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편견을 걷어내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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