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종교 단체 돌나라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사라진 아이들과 비밀의 왕국"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된 PD 수첩 에피소드였으며, 아래 영상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제목에서 비밀의 왕국은 브라질에 있는 돌나라 종교인들의 집단 거주지, 농장을 의미하고, 사라진 아이들은 그곳의 정화조 공장에서 놀다가 사망한 아이들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아마 100% 일 것이다) 돌나라 종교를 믿는 부모님의 의지로 브라질로 건너가게 된 아이들이고, 모태신앙으로 돌나라를 믿게 되었다.
영상에서 아이들은 누구보다 열렬히 돌나라를 믿고 있었다. 돌나라의 교주를 향한 무한한 감사, 믿음,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며, 돌나라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한다. 종교가 없는 나는 교리에 따라 자신의 삶을 억압하며 행복을 찾는 그들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예컨대, 돌나라를 믿는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돌나라의 교리에 따라 집단 농장에서 함께 농사를 짓고, 그것에서 배움을 얻는다고 한다. 만약 나보고 노동력을 강제로 착취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하라고 한다면 분개했을 것인데, 그들은 돌나라라는 종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돌나라 종교인들을 보며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이 났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서 선택할 기회를 주는데, 빨간 약을 먹게 되면 기계들이 만든 행복한 가상 세계에서 벗어나 끔찍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파란 약을 먹게되면 끔찍한 현실은 잊고 기계들이 만든 가상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파란 약을 먹은 자들은 기계들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마냥 행복한 사람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네오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할 것인가, 행복한 허상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사이에서 짧게 고민하다가 빨간약을 선택하고 기계에 맞서게 된다.
아마 돌나라의 종교인들은 이 종교를 알게 되었을 때 고민했을 것이다. 돌나라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허구의 행복을 좇으며 살 것인가 (파란 약), 아니면 돌나라를 통해 진실을 좇는 삶을 살 것인가에 (빨간약)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큰 결심을 하고 빨간 약을 삼켜 다른 종교에서 주는 행복의 허상을 부수고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 새로운 종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세속의 사람들이 좇지 않는 진정한 행복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난 용기 있는 선택을 했음을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자식들에게 모태신앙을 부여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매트릭스에 비유하자면 모피어스가 네오를 기절시키고 강제로 빨간 약을 먹이는 것과 같다. 부모들이 세속의 가치를 멀리하고 종교의 가치를 선택하는 용기를 발휘하였듯이 부모는 자식들에게도 용기있는 선택을 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파란 약을 먹고 기계들이 만든 행복한 가상 세계에 살며 기계들의 노예로 사는 삶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종교의 가르침보다는 세속적 가치를 중시하는 삶을 살더라도,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법으로서 종교를 가질 권리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를 갖지 않을 권리까지도 넓게 보장한다 (헌재 2001. 9. 27. 2000헌마159). 그러나 모태신앙은 이러한 권리를 간접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박탈하는 행위이다. 종교가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게 자라는 것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종교를 선택하거나 종교를 가지지 않을 권리를 일부 앗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종교를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가톨릭에서는 냉담자라고 칭한다고 하던데, 칭호가 어떻게 되었든 그들은 종교를 가지지 않을 권리를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매트릭스의 레이건이 빨간 약을 먹은 것을 후회하듯이, 그저 종교적 가치관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뒤늦게 인지한 사람들이다. 빨간 약을 통해내고 파란 약을 삼키게 된 그들의 선택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불교 신자인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 태어나자마자 불교 신자로 살아왔고, 지금은 따로 종교가 없는 상태이다. 불교에서 벗어났을 당시에는 마치 내가 어리석은 종교의 세계에서 탈피한 지성인이 된 느낌을 받았고, 반종교주의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종교의 가르침을 공부하였고, 종교가 없는 상태가 우월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렇다고 종교가 있는 게 우월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를 공부하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고 내 가치관과 맞는 종교를 (무교를 포함한)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은 파란 약을 먹은체 살고 있지만, 훗날 다시 빨간 약을 찾으러 떠날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는 누구에게나 존중받아 마땅한 오롯이 나의 선택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모, 사회가 선택해준 빨간 약이 아니라 자신이 빨간 약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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