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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H정전/마음 끄적

내가 정대만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by 승공돌이 2023. 2. 6.

최근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만화책으로 본 슬램덩크를 3D 애니메이션으로 보니 어린 날의 기억과 신기술이 더해져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인기를 끄니 슬램덩크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하였고, 의외로 정대만을 최고로 좋아하는 등장인물로 꼽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조사를 보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슬램덩크 캐릭터가 정대만으로 나왔다는 결과가 있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2등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애캐로 정대만을 뽑는 것에는 어떤 공통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캐릭터 자체가 잘생기기도 하고, 개과천선하기도 했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정대만의 모습이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대만이 사랑받는 이유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른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정대만의 배경을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정대만은 중학교 농구부 시절 이미 MVP를 찍은 적이 있고, 고등학교 진학 이후 부상으로 인해 농구 공백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때 양아치들과 어울리면서 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고, 농구를 증오 (사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함에 대한 분노)하는 시간 동안 몸이 망가지게 됩니다. 양아치 정대만은 농구부에서 행패를 부리다 존경하던 안 선생님을 만나고 다시 농구부에 들어오게 됩니다.

사실은 농구가 너무 하고 싶었던 정대만

최고의 실력을 가졌던 정대만은 농구부로 복귀하여 다시 예전의 폼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기가 계속될수록 예전의 폼은 돌아오게 되면서 정대만은 자신을 찾아가는 느낌을 느낍니다. 바로 이런 점이 정대만의 서사가 다른 인물들의 서사와 다른 점입니다. 강백호, 송태섭, 서태웅, 채치수는 모두 어제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정대만은 과거의 영광의 시절을 향해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혼자만 과거를 향해 가고 있는 인물인 것이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는 대사와 함께 삼 점 슛을 성공시키는 정대만의 모습은 많은 팬들이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가장 나 다운 사람은 무엇인지 기억해 내고 잊고 있었던 잠재력을 폭발시켜 현실에서 실현시키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정말이지 아직도 소름이 돋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 정대만도 매번 과거의 영광의 시절로 돌아가진 않습니다. 폼은 돌아왔지만 그것을 받쳐주지 않는 체력에 양아치로 살던 시절을 후회하는 장면은 많은 독자들에게 두고두고 화자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는 지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한 내면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한계를 이끌어내는 정대만의 매력에 사람들은 반할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저도 군대에서 휴가 복귀하는 날 이 짤로 기분을 표현한 적 있습니다.

전교에서 1등을 했었던 중학교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고, 전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꼽으라면 제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적이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학고에 진학하면서 저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보면서 좌절하기도 했고, 포항공과대학교에 학부 시절에는 분명 저보다 공부 못했던 친구들이 더 좋은 학점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는 지금은 이미 졸업한 동기가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분명 중학교 시절에는 최고의 학생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인생사는 저만의 인생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인생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20대 후반부터는 우리 모두가 정대만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들이 더 잘 나가고 있을 때 나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나 후회하기도 하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을 동경하면서 정대만처럼 과거의 영광을 찾고 싶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을 쓰는 김에 조금 더 제 생각을 쓰자면,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의 라이벌 구도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채치수, 신준섭 등이 거론되긴 합니다만 스토리 라인에서 강조되진 않죠). 강백호가 서태웅을 라이벌로 의식하고, 채치수-변덕규, 서태웅-정우성의 라이벌 구도가 눈에 띄는 것에 비하면 정대만은 라이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아마도 정대만의 라이벌은 항상 자기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매일 자신을 한계로 밀어붙이고 어제보다 더 발전하는 자신을 만드는 것이 정대만이 느끼는 유일한 라이벌 의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정대만은 환희를 느낍니다.

이런 정대만을 어찌 안 좋아 하겠습니까!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겠지만, 정대만처럼 매일 어제의 자신을 라이벌 삼아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아둥바둥 사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전에 못했던 무언가를 해냈다는 환희, 다들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고, 누구나 느끼고 싶은 감정이니까요. 정대만에 반할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저도 내일은 더 나아진 저를 발견하면서 정대만처럼 환한 미소를 지어보고 싶습니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라이벌은 아니더라도 변덕규처럼 찐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회칼들고 농구장에 난입한 변덕규는 레전드입니다.

진흙 투성이가 되라 채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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