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으로 아침에 명상을 하고 있다. 명상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생각을 비우는데 집중하는 것은 아니고, 15분 정도 외부 자극 없이 혼자서 가만히 있다는 것에 더 가깝다. 아침에 명상을 하면서 문득 철강 공정에서 고로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고로는 쉽게 말해서 철광석을 뜨겁게 끓여서 쇳물로 만드는 그릇이라고 보면 된다. 고로 아래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고로에는 끊임없이 철광석이 들어간다. 들어간 철광석은 끊임없이 쇳물이 되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고, 쇳물을 식히면서 모양이 잡히면 제품이 된다.
재미있는 점은 고로 아래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생산할 제품이 없더라도 고로는 끓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한 번 식은 고로를 다시 쇳물을 만들정도로 데우기 위해서는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스코 공장은 명절 연휴가 없다고 한다.) 고로는 쇳물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만들어야만 한다.
나는 문득 인간은 고로이고 철광석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고로에 시간이라는 철광석이 들어가면 지금은 내가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쇳물처럼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구자에게는 연구 업적이라는 쇳물이, 남편에게는 사랑스러운 가정이라는 쇳물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고로도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품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무의미한 쇳물이 고로에서 흘러나오듯,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인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의미한 무언가를 배출한다.
철광석은 유한하고, 고로는 멈출 수 없고, 고로가 멈추는 것은 곧 기능의 정지를 의미한다.
시간도 유한하고, 인간의 삶은 멈출 수 없고, 인간의 삶은 죽음만으로 멈출 수 있다.
의미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한다.
의미있는 삶의 아웃풋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라는 고로는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배출하고 있다. 의미 있는 배출을 하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목표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순간도 의미 없는 쇳물을 배출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인생은 고로이다. 고로 나는 목표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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