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의 첫 논문이 게재 승인되었다. 이번에 게재 승인된 저널은 Advanced Engineering Informatics이며 Impact factor는 8.8로 다학제적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상위 4.5%에 드는 저널이다. 인생 첫 논문을 꽤나 좋은 저널에 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 논문의 첫 버전이 작성된 시기는 2021년이었다. 그러니까 무려 3년 전에 작성한 논문을 지금까지 지지고 볶다가 겨우 게재 승인되었다. 그 기간 동안 이 논문은 7개의 저널에서 게재 거절, 소위 리젝트를 받았다. 심지어 한 저널에서는 리비전 과정에서 모든 리뷰어들이 자신들의 concern이 모두 해소되었다고 리뷰해 주었음에도 에디터가 리젝트를 주기도 했다. 리뷰어들의 의견이 긍정적었기에 더욱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리젝트를 세 번 받을 때까지는 그래도 멘탈이 괜찮았던 것 같다. 논문이 나오기까지 리젝트 당하는 것에 익숙해지라는 조언도 많았고,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리젝트가 다섯 번이 넘어가자 내가 학자로서 부적합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일곱 번째 리젝을 받은 순간에는 이 논문이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아닌 더 훌륭한 1 저자를 만났다면 이 연구 주제가 이미 논문으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마음 아팠던 것은 실패에 익숙해지는 나에 대한 미움마저 생겼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많이 마음이 아팠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 받은 리젝트 코멘트를 발판 삼아 더 논문을 발전시켜서 제출하자는 교수님의 조언에도, 더 좋은 저널에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라고 응원해 주는 여자친구의 말에 힘을 받긴 했지만, 어쩌면 졸업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우리 학과는 SCI급 논문 한 편이 졸업 요건이다). 사실 부모님께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안타까워하시고 걱정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 제출을 하고 리뷰 레터가 오기까지 거의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졸업 요건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리젝트를 줄 거면 빨리 주지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아마 반복적인 리젝트가 마음에 뿌리내린 패배 의식으로 인해 이번 저널에서도 당연히 리젝트를 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속에서 이 논문이 잊힐 때쯤 메이저 리비전 소식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리뷰가 괜찮게 와서 논문을 수정해서 제출했다. 그런데 이번 라운드에서 새로운 리뷰어가 추가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에디터가 내 논문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이거 리젝트 각 잡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1 라운드에서 의견을 주셨던 리뷰어는 자신의 모든 concern이 해소되었다는 응답을 주었지만, 새로 추가된 리뷰어가 연구의 근간을 지적하는 코멘트를 잔뜩 담아놨다. 정말 공들여서 논문을 수정하고 응답지도 작성했다. 이 분야의 연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임을 인정하면서 남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문제이니 문제 삼지 말아 달라는 부탁의 메시지를 쓴 느낌이었다. 말이 부탁이지 사실상 읍소에 가까웠다.
그리고 약 보름정도 후에 게재 승인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주변 사람들이 축하해 주고 기분 좋냐고 많이들 물어봤는데, 기분이 좋긴 한데 엄청 뛸 듯이 기쁜 것 같지는 않았다. 군대 제대하는 날 아침 같은 느낌이랄까. 분명 너무 많이 기대하고 기다리던 순간인데, 막상 찾아오니 의외로 덤덤해지는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교수님께 찾아가서 교수님 덕분에 이 논문이 게재될 수 있었음을, 그리고 부족한 나를 3년이나 기다려주셨음에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축하해 주셨다. 그다음에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드디어 논문이 나왔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너무 많이 기뻐하셨다. 사실 생각보다 긴 시간 논문이 나오지 않아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걱정도 되시고 궁금하시기도 했지만 아들 마음을 생각해서 못 물어보셨다고 하셨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논문이 출판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paper를 edit 하는 과정을 마쳤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출판사에서도 여러 실수를 저질러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다 고치고 제출을 했는데, 마음이 홀가분했다. '3년이나 날 괴로움에 들게 한 논문이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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