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꽤 오래전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입니다. 사실 저는 종교인들이 쓰는 삶의 가르침에 대한 도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속세에서 벗어나서 사는 사람들은 속세의 인간의 세속적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 그런 이들이 주는 지혜라 함은 속세의 인간인 저에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서가에서 이 책을 보더라도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에서 책을 고르던 중 이 책의 저자 비욘 린데블라드의 소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다국적 회사의 C-level까지 올라간 경력이 있고, 십여 년 간의 승려 생활 이후에 다시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속세에서 종교인으로, 종교인에서 다시 속세로 돌아온 그의 경력을 보고 속세에 적용 가능한 종교적 가르침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이 책의 가르침이 제 인생에 좋은 나침반이 되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승려의 삶을 시작하면서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17년간 수행하였고, 다시 사회에 돌아와서 이 책을 저술했습니다. 책에서는 그가 승려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승려로서의 삶, 사회로 돌아와서 루게릭 병을 앓게 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기구한 삶의 궤적을 그린 그는, 죽음에 이르기 전에 그가 깨달은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2주일 간 매일 이 책을 읽으면서 나티코에게 지혜를 듣는 느낌이었기에, 마지막 단락에서 그의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것을 보았을 때,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 큰 감명을 준 책이었지요.
이 책은 36개의 섹션을 통해서 저자가 지혜를 얻게 된 에피소드들을 나열하기도 하고, 어떤 결심을 하게 된 계기를 다루기도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지금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기에 죽음 앞에서 후회가 없는 그의 삶이 이 가르침의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아름답게 사는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여러 에피소드에서 반복적으로 알려주는 몇 가지 아름다운 삶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에 집중하는 삶
과거에 집착하다 보면 우리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시점은 바로 이 순간입니다. 나티코는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지금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그가 승려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승려의 삶을 끝내게 된 계기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이 자신에게 하는 삶의 방향을 듣고 나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이고 떠오르는 생각은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생각이 이끄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잠시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호흡 명상과 같은 방법이 있겠지요.
누군가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하루살이 같은 삶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미래를 계획해야 합니다. 다만 미래를 지나치게 통제하려 하지 말고 지금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나티코가 배운 삶의 지혜입니다. 그는 증명할 수 없지만 그렇게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 불교에서의 연기설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기적이 일어날 여지 섹션에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미안하다고 말할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것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죽음에 더 가까워지고, 오늘보다 내일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에 지나치게 가까워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집중해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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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삶
지혜와 지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나티코는 지식은 자신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고, 지혜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가를 아는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메타인지라는 단어를 통해서 비슷한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메타인지 말이죠. 나티코는 메타인지를 갖추는 것을 넘어서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까지를 지혜라고 표현합니다. 지식을 갖추면 잠시 효율적으로 대화할 수 있지만, 지혜를 갖추면 내가 모르는 부분까지 알게 되고 말하는 이의 마음도 행복해지기 때문이죠.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 곰돌이 푸의 지혜 섹션에서
마법의 주문 섹션에서는 이 책의 제목인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가 나옵니다. 앞서 말한 지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 주문이 될 것 같네요. 한편으로는 나티코 본인에게도 이 주문을 필요한 순간에 떠올리는 것은 정말로 어려웠다고 고백합니다. 지혜를 다 갖춘 것 같은 승려에게도 지혜가 필요한 순간 꺼내는 일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가 살면서 갈등의 순간이 온다면 한번쯤 이 주문을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너무나 많으니까요.
갈등이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 마법의 주문 섹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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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하기보다는 놓아주는 삶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가진다는 것은 단지 가지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길 바라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까지 모두 포함하는 집착의 개념입니다. 저도 '우리 랩원들은 정답이 있는데 왜 꼼수를 부릴까'라는 생각에 그들을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마음,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이미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자 내가 현재를 더 아름답게 살기에 방해만 되는 요인일 뿐입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통제한다고 우리가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나티코는 이것을 스승 아잔 수시토 스님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배우게 되었고, 아무것도 없는 암자에서 수련하면서 느낀 행복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삶에서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느낀 경험을 공유해 줍니다.
아잔 수시토 스님은 말했습니다 "나티코, 혼돈은 자네를 뒤흔들지 모르지만 질서는 자네를 죽일 수 있다네.". 그렇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먹을 너무 세게 쥐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 닫힌 주먹, 열린 손바닥 섹션에서
물론 세속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삶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다음 달의 가스비를 낼 수 없게 된다면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소유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승려들과 같이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완전히 안정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지혜가 세속에서는 쓸 수 없는 쓸모없는 것은 또 아닙니다. 2010년의 Kahneman & Deaton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은 어느 정도의 부가 축적된 이후로는 부의 증가와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거든요. 저는 이 어느 정도가 세속의 인간이 죽음까지 안정할 수 있는 수준, 내지는 후손이 안정할 수 있는 수준의 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속의 인간이 불확실성을 감당한 이후에는 무언가를 더 통제하는 것이 행복과는 관련이 없어지는 느낌이지요.
지금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저는 나티코처럼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할 때 느끼는 행복'을 평생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미래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제가 가진 그릇이 조금 작은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삶은 지양하려고 합니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이 가끔씩 내 뜻대로 안 행동해도, 그 나름대로 사랑스러운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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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고통을 주지 않는 삶
내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것은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누가 내 고통을 돌봐주겠습니까. 조던 피터슨이 이야기했던 인생의 두 번째 법칙인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도 비슷한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항상 너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느니라." 우리 자신에게 먼저 연민을 베풀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향한 연민은 더더욱 부족하고 취약할 것입니다.
- 모든 것은 너에게서 시작한다 섹션에서
그리고 나티코는 남을 미워하고 분노하지 말라는 지혜를 전해줍니다. 저는 이 책을 다시 살펴보면서 이 뜻을 두 가지로 해석했습니다. 첫 번째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자체가 내 마음의 짐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순간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를 미워하는 마음을 유지하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온전히 내가 결정한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미워하는 마음은 최대한 빨리 덜어내는 것, 그것이 내 마음에 고통을 주지 않는 삶이겠지요. 문득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서 그녀의 삶을 모두 희생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죠.
두 번째 해석은 불교에서의 연기설이었습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나티코는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으로 세상도 나를 대할 것이라는 말을 해줍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서 나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연기설에 기반한 말이었겠지요. 내가 다른 사람을 애정을 가지고 대하면 그 애정은 다시 나에게 돌아오고, 미움을 가지고 대한다면 그 미움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결국 그 미움은 다시 내 마음의 고통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행동엔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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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당당한 삶
이 가르침은 남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저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법과 질서를 지키면서 삽니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살까요? 아니면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요? 신이 정한 절대 선이 존재하기에 그것을 따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 계약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그것도 정답이겠지만 나티코는 악한 행동은 내가 기억하고 마음의 짐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사실 저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하거나,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책에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냥 그것이 옳다고 하니까 따른 것이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기억이 내 마음의 짐이 되리라는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하더라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제 나티코가 저에게 그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내가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못하면 제가 알고, 제가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악한 행동은 되도록 저지르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아잔 파사노 스님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모님 집을 찾았습니다. 위스키 병을 비우던 사촌은 술을 잔에 붓고는 스님 앞에 두었습니다.
"한잔 안 마실래?"
"괜찮아. 내가 속한 종파는 술을 마시지 않아."
"에이, 뭘 그래. 누가 알겠어"
"내가 알겠지"
- 네가 세상에서 더 보고 싶은 것 섹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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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마치며
이 책은 정말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나티코가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편하게 말해주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나티코가 루게릭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편안한 말들이 마냥 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루게릭임을 알게 된 순간을 회상하는 부분부터는 그가 죽어가면서 유언처럼 남기는 말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무거웠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갑자기 좋지 않습니다. 고작 2주 동안, 저자와 독자로서 만난 나티코였지만 정말로 친절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것 같이 마음이 아픕니다.
아프다는 것은 마음에 상처가 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육이 성장하려면 일부로 상처를 주고 다시 단백질을 공급해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마음의 상처가 난 것은 아마 너무 큰 깨달음이 한 번에 제 마음에 들어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좋은 마음, 좋은 인연, 그리고 나를 아끼는 마음을 공급해 줘서 더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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