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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el/책 되새김

내 삶을 부정할 지도 모르는 "가짜 노동" by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레느스 포그 옌센

by 승공돌이 2023. 2. 24.

가짜 노동 | 데니스 뇌르마르크 - 교보문고

가짜 노동 | 가짜 노동을 말하지 않는 사회 가짜 노동이 진짜가 되는 사회 일과 삶에 진짜 혁신을 가져올 근본적인 질문들일하지 않는 ‘가짜 노동’의 시대 우리가 더 많은 일을 하는 진짜 이유

product.kyobobook.co.kr

우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근로하면서 살아갑니다. 보통은 8시간 정도를 근로에 활용하고, 더 많은 시간을 근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합니다. 로보틱스 기술의 발달로 육체노동의 많은 부분이 대체되었고, 심지어 인공지능은 사람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글을 작성하기도 합니다. 지식 노동과 육체노동의 많은 부분이 기술로 넘어가고 있는데, 대체 사람들은 왜 계속 하루에 8시간씩 일하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가짜 노동의 저자들은 사회가 가짜 (Pseudo) 노동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 해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쓰면서 읽으니까 더 잘 이해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짜 노동은 저자들이 새로이 정의한 단어입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노동을 가짜 노동이라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미화원이 쓰레기를 줍는 노동을 하였다면, 이 노동의 결실은 쓰레기를 줍는다는 결실을 맺은 노동입니다. 비교적 단순한 노동일수록 결실이 명확하기 때문에 가짜 노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다른 예시로, 어떤 연구원이 아무도 읽지 않을 300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쓰는 노동을 하였다면, 이 노동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결실을 맺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보고서라는 산출물이 있다고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니라, 그 보고서가 누군가에게 읽힘으로써 지식을 전달한다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 가치가 모호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노동일수록 가짜 노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심지어 이 사회는 이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가짜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이 주장하는 가짜 노동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입니다.

가짜 노동이 생기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아무도 보지 않는 홍보물을 만드는 공무원,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아무도 읽지 않는 두꺼운 버전의 보고서와 요약본을 따로 만드는 연구원, 논문 개수를 채우기 위해 지식 창출 없는 논문을 쓰는 교수처럼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가짜 노동이 존재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 쓸모없는 일들을 위해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쏟고 있고, 심지어 기업 (대학, 정부)는 가짜 노동에 대한 급여를 줍니다. 대체 이런 일들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럴듯함에 중독된 사회입니다. 병원이 창출해야 하는 본질적인 가치는 환자의 건강일 것입니다. 그런데 병원 홍보부장이 직원들에게 20년짜리 vision을 만들라는 그럴듯한 프로젝트를 지시한다고 가정하면, (1) 지시자는 자신의 성과로서 그럴듯한 산출물이 생기고, (2) 노동자들도 그럴듯한, 그러나 가치 창출을 하지 않으니 설렁설렁해도 되는 노동을 하게 됩니다. 홍보부장은 그럴듯한 산출물로 사내 알력이 생겨서 더 많은 직원을 아래에 둘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직원들이 가짜 노동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생긴 것입니다. 모든 부분에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저자들은 KPI를 만들거나 새로운 경영 철학을 도입하는 본질적 가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는 모든 활동들의 근원은 그럴듯함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시간 단위로 측정되는 노동의 가치입니다. 일반적인 근로자들은 하루에 8시간 일하는 대가로 급여를 지급받습니다. 근로자 입장에서 가짜 노동을 쳐내고 4시간 만에 본질적인 가치를 만드는 일들을 모두 해낸다면 남은 4시간에 대한 급여를 받기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가짜 노동을 통해서 급여를 받을만한 일을 하고 있음을 그럴듯하게 나타내고, 심지어는 바쁘지 않음을 숨기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곧 돈이 된다!

세 번째 이유는 신뢰의 부족입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지 감시하기 위한 노동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작업장이 결실을 맺는 가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감시라는 가짜 노동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예시로, 교수에게 1년에 몇 건 이상의 논문을 써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대학은, 아무래도 그러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교수가 연구활동을 게을리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매년 수 건의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성과를 쪼개거나, 가치 없는 논문을 투고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신뢰가 없어 생기는 규제로 인해 가짜 노동이 생기게 된 것이지요.
마지막 이유는 사람들이 가짜 노동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진짜 노동이든 가짜 노동이든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노동에 쓰면서 살아갑니다. 수십 년간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당신이 쏟아부은 많은 시간은 결실을 맺지 못하는 가짜 노동이었습니다"라고 선언한다면 그 사람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가짜 노동을 인정하기보다는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이 더 편할 것입니다. 저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거울방에 갇힌 사람들이라 표현합니다. 이러한 기조는 사회라는 관계망 속에 녹아들어 사라지지 않고 가짜 노동에 종사하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가짜 노동은 없애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들은 저자들이 가짜 노동이라고 규정한 것들이 어쨌든 사회를 굴러가게 하고 있고, 실제로 사회는 더 나아지고 있지 않냐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예시로 가짜 노동이 사라지더라도 괜찮다는 주장을 합니다. 주장의 요지는 종래의 기술 발전의 방향은 누적된 핵심 기술에 대한 수정/보완이 대부분이며, 새로운 핵심 기술의 개발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련이 유인 우주선을 보내던 과거와 비교해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주 항공 기술을 위해서 매진하고 (그리고 해왔) 지만, 그때의 우주 항공의 핵심 기술의 발전 속도와 지금의 그것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죠. 
결국 저자들이 주장을 요약하면 가짜 노동이라고 규정한 노동에 시간을 쏟으면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가짜 노동의 기여를 기대하느니, 여가 시간을 늘림으로써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낫다는  것입니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이 무엇인가 사색하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면서 살고,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외재화하는 활동 등을 하면서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거울방에 갇히지 않은 사람들은 가짜 노동을 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무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활동을 단지 급여를 위해서 수시간씩 일하는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어요. 문득,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박사님이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 방안을 제시해 봤자 상무 입맛대로 방향이 바뀌어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가 없다고 자조했던 일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가짜 노동은 노동자도 우울하게 만든다

요약하자면 사회 발전에 기여하지도 않고 근로자들을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는 가짜 노동은 없애는 게 적절하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가짜 노동을 어떻게 없애야 하는가

가짜 노동은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잘못된 철학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 저자들의 저자들의 주요 주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 노동은 철학을 바꿈으로써 없앨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철학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본질적인 결실을 맺는 일을 하라 (핵심 업무에 집중하라)
  • 불완전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여라, 지나친 완전함과 확실성을 얻기 위해 생기는 노동을 지양하라
  • 동료를 신뢰하여 불신의 비용을 줄여라
  • 가짜 노동을 인정하고 과시성 업무나 프로젝트를 지양하라
  • 다른 기업의 과시성 성과/업무를 모방하지 마라
  • 노동의 가치를 시간으로 계량하지 마라
  • 핵심 업무에 방해된다면 복종하지 마라!!
  • 성찰적 판단으로 규칙/규범에 도덕적 책임을 희석하지 마라
  • 내가 가짜 노동을 하는지 경계하고 타인의 가짜 노동도 인지 시켜라
  • 관리자의 역할은 결정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상한 경영 과학 마케팅에 속지 마라
  •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전문가적 소양과 조직이 잘 굴러가게 하는 행정가적 소양을 함께 가져라
  • 직원들이 가짜 노동에 불복종한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가짜 노동이 사라질 수 있는가?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이 주장하는 가짜 노동 없는 사회가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자들은 마케팅 업무나 인사 업무에 대해서 거의 적의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실 저도 엔지니어로서 어느 정도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긴 합니다. 회사가 좋은 기능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면 그 본질을 다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마케팅에 많은 비용을 쏟아야 하는 걸지.. 이런 류의 고민들 말이죠. 그런데 물건을 많이 팔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영자 (관리직의 끝판왕)도 묵묵하게 성과만 내서는 안됩니다. 그럴듯한 말로 자신의 성과를 표현해야 (VIsion 2020 같은 거창한 단어와 함께..!) 사람들은 알아줍니다.
그럴듯함에 중독된 사회는 더 강한 그럴듯함만을 좇을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본질적인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서 시간을 쏟지 않고 귀찮음을 느낍니다. 원료와 성분도 알 수 없는 제품을 유명 SNS 인플루언서가 산다고 따라서 사고, 실제로 이 런 마케팅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업체들도 생깁니다. 내가 잘 아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잘 팔리는 물건을 찾아서 그럴듯하게 스토어를 차리는 방법에 대한 강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럴듯함은 돈이 되고, 사람들은 그럴듯함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본질적 가치를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찾기 어려운 본질보다는 그럴듯함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짜 노동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가 가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실 위에서 든 가짜 노동의 사례들은 비교적 가짜 노동임이 명확한 사례들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든 사례들 중 강의 계획서 만들기와 같은 것들은 제가 느끼기에는 가짜 노동은 아니었습니다. 해당 사례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교수들이 강의 계획서를 만드는데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지만, 어차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맞추어서 강의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강의 계획서 작성은 가짜 노동이라는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혹자들은 그래도 강의 계획서를 보고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이라고 볼지도 모릅니다.
저자들은 끊임없이 "돈을 받는다고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이 아니다"를 강조합니다. 실제로 맞는 말이죠. 그러나 진짜 노동과 가짜 노동의 경계를 짓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 사회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장가로 노동의 가치를 매겨버리는 것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떤 노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토론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긴 하겠지만, 공통의 합의를 가지고 그 선을 규정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가짜 노동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기술의 발전으로 육체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신체의 효율을 넘어선 순간 시장은 인간을 육체노동으로부터 강제로 해방시켰습니다. 강제 해방으로 러다이트 운동 같은 것이 벌어지긴 했지만 말이죠. 가짜 노동의 핵심에 있는 사무직, 지식 노동자들의 업무들도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강제 해방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쓸모없는 메일 읽기와 같은 가짜 노동이 생기긴 했습니다만, 자연어처리 기술로 요약본을 읽게 된다거나, 나와 관계없는 정보들은 걸러버리는 기술로 가짜 노동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협업 툴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재택근무는 쓸모없는 회의라는 가짜 노동을 없애기도 했지요. 어쩌면 제가 나중에 연구자로 있을 때, 지식 창출 없는 논문을 쓰면 인공지능이 연구 가치가 동일한 논문을 찾아내어 리젝트 시킬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례들로 봤을 때, 가짜 노동까지 사라지게 만드는 어떤 기술의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완전히 가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이 사라진 삶을 대비하자

아마도 가짜 노동이 사라진다면 보다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사람들에게 갑자기 점심부터 쉴 수 있는 삶을 주면 많이 당황할 것입니다. 저자들도 노동 시간이 줄어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제 삶의 가치는 무엇에 있는 걸까요. 저를 저답게 살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제는 단순히 좋은 연구자가 되는 방법만 갈구할 것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죽기 전에 가짜 노동이 사라진 사회가 올지도 모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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